[전시] 유명숙 - 흘러가는 사랑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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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숙,  호쾌한 필선의 픽토그래피

유명숙의 그림을 보며 필자는 암각화를 떠올렸다. 엉뚱한 생각인지 몰라도 선사시대 사람들이 돌이나 동물에 그림을 그려넣은 것처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오랜 시간의 숨결을 켜켜이 안고 있는 존재, 그러면서도 벼락이 치고 천둥이 번쩍여도 꿈쩍 않고 그 자리를 지켜온 그 강인한 생명력, 그것이 영영 땅속에 묻혀버리지 않고 누군가에 의해 발굴되었을 때의 환희의 순간 등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따지고 보면, 인류는 문자를 사용하기 전에 그림으로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였다. 문자의 전신으로 그림을 드는 것이 이 때문이고, 그 흔적을 우리는 암각화나 동굴벽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림문자(pictogrphy)라고 할 때 ‘picto’는 ‘그림’을, ‘telegram’은 ‘전보’를 뜻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림과 소통을 아우르는 합성어가 오늘날의 픽토그래피인 셈이다.  일찍부터 그림을 통한 소통의 장치가 있었던 셈인데 옛 사람들은 긁고, 새기고, 마모하며, 흠집을 내는 행위를 통하여 문자 대신 그림으로 나름의 의사전달체계를 마련하였다. 이런 체계는 하이테크놀로지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유명숙은 ‘긋기’를 회화의 주무기로 삼는다. 끝이 뾰족한 도구를 이용하여 화면에 스크래치를 내거나 긁는 행위로 그림을 만들어간다. 가령 단번에 이파리 모양을 획득한다든지 연밥과 풍성한 연잎, 나무에 매달린 매화를 몇가지 필선으로 얻어낸다든지, 어깨를 들썩이며 춤추는 인체를 율동감 있게 묘출하는 등의 표현은 공통적으로 ‘긋기’에서 얻어진 결과들이다.
어떤 면에서 ‘긋기’란 가장 평범하면서도 자연스런 행위이다. 누구나 모래사장에서 나뭇가지로 그림을 그리거나 혹은 백지 위에 연필이나 볼펜으로 끄적이며 낙서를 하거나 무언가를 상상하며 그림을 그려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잘 그리고 못 그리고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손닿는 대로 어떤 모양을 만들고 때로는 생각지도 못한 형체를 얻었을 때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한다. 의도적이든 무의도적이든 ‘긋기’가 그림을 탄생시켰고, 현대에 와서도 글씨를 테마로 삼아 명성을 떨친 화가로 싸이 톰블리, 프란츠 클라인, 바스키아 등이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유명숙의 작품이 그들과 다른 점은 고풍스럽게 문인화적 발상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다시피 그의 그림은 단순한 끄적거림이나 낙서 정도에 머물지 않는다. 분명한 화제(畵題)를 지니고 있거니와 그 화제는 연꽃, 매화, 대나무 등 사군자화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것들이다. 상감기법을 응용하여 곡선에 의한 율동감을 강조한다든지 명암이나 입체감을 생략하고 선조에 의해 평면회화를 구축한다는 점에서 동양화에 근접해 있다. 미국 화단에서 활동하는 그로서는 서구적인 것보다는 동양적인 예술이 몸에 맞는 옷처럼 훨씬 편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조선시대의 사대부들처럼 군자의 절개를 강조한 것은 아니지만 그림에서 수묵화의 기품이 묻어난다.

아무래도 유명숙 회화의 특징은 호쾌한 운필(運筆)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운필은 독자적이거나 자율성을 지닌 것은 아니나 화면에서 선의 중요성을 두드러지게 강조하고 있다. 여타의 채색 및 색깔의 혼합을 일체 배제하고 선 중심으로, 그것도 단선 위주의 작업을 꾀해오고 있는 것이 그 이유다. 그만큼 운필효과도 두드러진다. 흔히 동서미술을 비교할 때 동양의 그림은 선 중심적이고 유럽의 회화는 색채 중심이라고 말하는데 이 말은 유명숙에게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작업에선 선을 빼놓는다면 성립이 안될 정도로 선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그는 가급적 필선 효과를 증대시키기 위해 바탕을 물렁물렁하게 만든다. 바탕의 질료가 채 마르기 전에 필적을 선명하게 남기도록 사전에 정지작업을 하는 것이다. 일필휘지에 맡길 수밖에 없는 작업의 특성상 순간의 손놀림에 작품의 당락이 결정된다. 그리하여 바탕이 다 마른 후에는 비바람으로 삭은 담벼락 또는 수만년에 걸쳐 형성된 퇴적층을 연상시키도록 하는 것이다.

그의 선은 바람에 흔들린다. 바람에 나부끼며 흔들리는 동작이 포착된다. 그에게 바람은 겨울이면 따듯한 공기를 실어나르고 여름이면 시원한 공기를 전해주는 고마운 자연의 선물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인간을 감싸주고 돌보아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나타낸 것같다. 선선한 바람의 품안에 안겨있는 풀과 식물들이 저렇게 편안해보일 수가 없다.
또 한가지 그의 작품의 특징이라면 빛이 들어가는데 빛의 작용으로 앙상한 나무에 새 싹이 자라고 힘찬 생장활동을 촉진한다. 주제의 측면에서는 그런 빛이 선의 효과보다 훨씬 중요할 것이다. 그의 작품에서 빛은 어둠속의 나무를 밝히는 구실을 할 뿐만 아니라 나무가 약동과 활력을 가질 수 있도록 북돋우는 역할을 한다. 밝음과 어둠의 콘트라스트를 통해 빛의 존재를 더욱 선명하게 부각시키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작가는 그 선에 사물묘사 이외에 또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즉 “매화의 선이 흘러가듯, 꽃이 흘러가듯이 사랑이 동에서 서로, 서에서 동으로 흘러가기 바란다”고 말한다.

선의 특징은 부드러운 데에 있다. 가냘 퍼 보이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그 선은 어떤 높은 장벽이나 감히 넘볼 수 없는 경계도 가뿐이 넘어갈 수 있다. 작가의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작가는 그의 필선(筆線)이 인종과 국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매개물로 작용하기를 바란다. 다시 말해 그의 선은 조형적인 요인에 국한하지 않고 원대한 곳으로 치닫는다. 작가는 평화의 줄이요 희망의 줄이요 사랑의 줄이 되기를 바란다. 그의 바램처럼 그의 그림이 동서의 가교요 더 근본적으로는 ‘인간소통의 장’(場)으로 자리매김되기를 기대해 본다.

서 성 록
안동대 미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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